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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 인조이야기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가장 가슴아프고 또 치욕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조반정을 일으키고 왕위에 오른 인조가 청국의 태종 홍타이지란 인물에게 절을 하고 머리를 땅에 찧으며 항복을 했던 그것이 바로 삼전도의 굴욕이다. 




인조는 서인들과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다. 그것이 바로 인조반정이다. 명분은 폐모살제였다. 그렇게 왕위에 오른 인조와 서인세력은 지금에 와서 "무능했다"라고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그럴만도 한 것이 1627년 후금의 3만 대군이 조선을 침략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정묘호란이다. 조정은 강화도로 대피하게 되었고 결국 강화조약을 체결해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게 된다. 서인 정권은 오랑캐 후금에게 자존심이 상하게 되고, 돌아가기가 무섭게 다시 친명금배를 외치고 후금의 2차 침략에 대비해 군대를 강화하고 성울 수리하게 된다. 후금은 곧 명까지 위협하는 동북아시아 최대 강국으로 성장하게 되고, 1636년 후금의 국호를 청으로 바뀐 뒤 조선을 침략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병자 호란이다. 





병자호란은 일방적인 학살과도 같았다. 불과 12일 만에 개성까지 도달하고, 다시 강화도로 피신하려던 조정은 이를 예상한 청의 군대에 가로막혀 남한산성으로 도망가게 된다. 청의 군대에 포위되었고, 성안의 식량은 50일이 되지 않아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군사가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1637년 1월 인조는 세자와 대신들을 모두 거느리고 남한산성밖으로 나오게 되고, 청 태종에게 항복하는 의식을 치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삼전도의 굴욕" 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청나라는 군대를 철수시키면서 세자(소현세자)와 왕자(봉림대군), 삼학사 대신들(홍익한, 오달제, 윤집)을 인질로 끌고 가기까지 한다. 8년 간 잡혀있던 소현세자는 돌아오지만 급사하게 되는데 그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충분히 그럴법 한게 소현세자는 청에 머무는 동안 첨단 문물을 접하면서 조선이 강해지려면 낡은 성리학을 매달릴 것이 아니라 청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지만, 청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인조와 서인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 있었을거라 생각이 된다. 인조는 소현세자의 아들, 손자에게도 왕위를 넘겨주지 않고, 소현세자의 동생인 봉림대군에게 넘겨주게 된다. 1649년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르는데, 17대 국왕 효종이다.





효종은 삼전도의 굴욕을 되갚아 주겠노라! 군대를 강화하며 북벌을 꿈꾸게 되지만 결국 이루지는 못하게 된다.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인조는 재위기간 동안 두번의 침략을 겪고, 조선 최고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삼전도의 굴욕까지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고 굴곡이 많은 삶을 보내게 되었다. 후에는 아들까지도 질투하고, 아들과 며느리의 죽음과 연관되어 거론이 되기까지 슬픈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고자 반정을 일으킨 것을 아닐텐데 인조의 삶이 참 슬프게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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