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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조선왕조 사도세자 이야기

소통_쟁이 2016. 9. 2. 18:14

조선왕조 사도세자 이야기 


500년 조선왕실의 역사에서 가장 최악의 비극으로 꼽히는 영조와 사도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영조,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도 굉장히 많이 다뤄질 만큼 조선역사에서도 큰 소재임이 분명하다. 작년 영화 "사도"는 영조역을 맡은 송강호와 사도세자역을 맡은 유아인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큰 인기를 끌었고, 자연스럽게 사도세자에 대한 관심이 다시 한번 높아졌다. 




우선 영조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영조는 조선 제 21대왕 아버지는 숙종이고, 어머니는 숙빈 최씨다. 영조는 52년동안 최장기 재위한 임금으로 83세로 생을 마감한다. 영조는 무수리 출신 숙빈최씨가 생모로 정통성이 취약한 왕이라는 컴플렉스를 갖고 살아간다. 경종 독살의 의혹에 모친이 천출이라는 점이 더해져 영조는 불안한 재위 초기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영조는 격렬한 붕당의 갈등을 탕평책으로 진화시키고 공론을 장악하여 왕권 강화를 도모한다. 백성들이 고통스러워했던 군대와 토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제도개혁을 해나간다. 하지만, 영조에 대해서는 너무 정치적이였다 라는 평가도 있을 정도로 영조는 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정치를 정말 잘하고자 했던 왕이였던 것은 분명한 듯 하다. 




그런 그에게 늦둥이 아들 사도세자는 참으로 이쁘고, 기대 또한 컸을 것이다. 실제로 총명한 사도세자가 어릴 적에는 주변에 이야기도 많이 했다고 한다. 일찍이 대리청정을 시작한 사도세자는 초기에는 당당한 체구에 위엄 있는 눈빛과 목소리까지 갖춰 신하들이 감히 고개조차 들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혈질에 변덕도 심한 영조의 미움과 멸시가 가득 담긴 질책이 반복되면서 병을 얻게 된다. 





자신이 어렵게 이룬 정치적 안정과 튼튼한 왕권을 유지해나갈 후계자를 원했던 영조는 그런 모습에 더욱 실망하고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해 잡희와 사냥등에 열중하며 별것 아닌 일로 칼을 휘두르는 등 사람을 쉽게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1762년 왕세자가 반역을 꾀한다는 나경언의 고변이 있은 뒤 아버지와의 갈등이 더욱 심해지면서 광기를 보이자 생모인 영빈 이씨의 고발이라는 형식을 빌려 영조가 자결을 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끝내 자결하지 않고, 서인으로 폐하고 뒤주속에 가두어 8일만에 죽게 한다. 죽은 뒤 바로 사도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아들인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으로 추존되었다. 1899년 장조로 추촌되기도 한다. 




흔히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게 영조와 사도세자인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부자사이가 그렇듯이 두사람 또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 관계는 점차 악화가 된 것이지 영조가 사도세자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보여주는 편린들도 적지 않았다. 결국은 천륜이라 부르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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