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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를 통해 본 조선 마지막 호랑이 이야기 



한반도의 모습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조선의 많은 사람들은 호랑이의 용맹스러움을 칭송하며 신성한 존재로 여기기도 했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산의 왕이라는 의미를 담아 호랑이를 "산군"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물론, 민간에서는 인명을 앗아가는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호랑이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를 사량하는 부대를 운영하여 호랑이의 개체수를 조절해왔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 조선인들의 소요를 막기위해 엽총 소지를 금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호랑이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해마다 200명 이상 가축 7000마리 이상의 호랑이 등 맹수의 피해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일제는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해로운 짐승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호랑이, 늑대, 곰 등을 토벌하는 "해수구제" 정책을 펼치게 되는데, 일제강점기에 조선 호랑이는 141마리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훨씬 많은 호랑이가 잡혀 죽었다고 한다. 




과연 일본은 조선의 민간을 지키기 위한 이유로 이렇게 많은 호랑이를 죽인것일까? 이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다. 우선, 섬나라 일본에는 없는 맹수 호랑이가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맹수는 늑대였다. 그렇기에 조선의 호랑이는 선망의 대상이자 묘한 컴플렉스로 작용을 했을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의 호랑이를 잡아 먹었다는 일화 역시 굉장히 유명하다. 어찌 보면 호랑이 말살은 한민족 혼의 말살을 상징하기도 했던 것이다. 





영화 대호는 분명 여러가지 픽션이 가미 된 영화이다. 영화에서처럼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살려주기 위해 노력했던 포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호랑이가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는 영화에서 처럼 특별했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지금은 중국에 의지해셔 겨우겨우 조선의 호랑이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조선의 용맹스런 호랑이를 잘 지켜내서 그 포효를 다시 한번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는 1921년 경주에서 포획된 몸무게 400kg 길이 3m30cm 호랑이가 마지막이라고 하는데, 영화에서도 실제 마지막 호랑이가 저 이야기를 토대로 등장한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너무도 완벽하게 호랑이를 만들어낸 CG영상 역시 호평을 받았는데, 완벽한 모습의 호랑이와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 대호를 보며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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